나는 자연을 느낄 수 있는 시골 여행을 좋아하는 쪽이라, 대도시인 뉴욕 여행은 관심도 없고 흥미도 없었다. 어쩌다 보니 뉴욕에 사는 남자를 만나 어쩔 수 없이 뉴욕에 몇 번씩 와야 했는데, 이렇게 감흥 없는 나도 '아 이래서 뉴욕 뉴욕 하는구나!' 하고 눈이 번쩍 뜨이게 만든건 역시 브로드웨이 뮤지컬이 아닐까 싶다. 특히 결혼하고 여기 와서 살게 되면서는 엄마 아빠랑 멀리 떨어져서 여기서 뭐하는건가, 서울이나 가고싶다, 여긴 어디 난 누구 뭐 그런 기분이 들 때마다 브로드웨이 뮤지컬을 찾게 되었고, 잠시나마 '뉴욕뽕'에 취해서 또 며칠을 활기차게 살아갈 수 있는 힘이 되기도 했다. :>
뉴욕으로 여행을 오는 사람들에게도 꼭 추천하고 싶은 브로드웨이 쇼지만, 수 많은 작품 중에 무엇을 볼 것인지를 물으면 쉽게 대답하지 못하겠다. 그래서 내가 본 일곱 개의 작품 - 킹키부츠, SIX, 라이온킹, 위키드, 시카고, 알라딘, 뮤지컬은 아니지만 슬립노모어 - 에 관한 스포 없는 짤막한 후기를 기록해보려 한다. 각자 취향에 맞게 골라서 보면 좋을 듯하다. 참, 혹시 내용을 모르거나 잘 기억이 나지 않는 스토리라면 나무위키라도 읽어보고 가길 추천한다. 영어인데다가 노래로 하다보니 중간 중간 놓칠 때가 있어서, 극의 흐름을 이해하는데 훨씬 도움이 된다.
1. Kinky Boots
이 작품은 팬데믹 전에 본 작품이고 지금은 안 하고 있지만, 검색해보니 7/26부터 돌아온다고 한다. 내가 처음으로 본 뮤지컬인데 배우들 성량이 장난이 아니었다. 남자들이 신는 부츠 하이힐을 만드는 내용이라서 각선미가 예쁘신 남성분들이 나와서 노래를 빵빵 질러대는 것이 꽤나 인상적이다. 노래만 놓고 따지면 일곱 개 뮤지컬 중에 상위권에 들 정도로 강렬했다. 하지만 엄청 유명한 스토리는 아니기 때문에 기회가 한정적이라면 다른 대표적인 뮤지컬들을 먼저 보는 것을 추천한다.
추천 대상: 뮤지컬 경험이 많은 사람. 어린이에겐 다소 난해할 수 있어 노노.
2. SIX
이 작품은 뭔지도 모르고 브로드웨이 로터리에 응모했다가 당첨이 되어 보게되었다. 원작은 영국 뮤지컬이고 헨리8세의 여섯 명의 부인들에 관한 이야기라 그와 관련해서 읽고 가면 극의 흐름을 이해하기가 훨씬 수월하다. 다른 뮤지컬과의 차별점은 대사가 거의 없이 작품 전체가 다 노래로 이루어져있다. 그래서인지 공연 시간도 인터미션 없이 한 시간 정도로 짧은 편이라 짧고 굵게 보기 좋은 작품이다. 저 포스터에 있는 언니들이 그대로 나와서 노래하는데 각자의 뮤즈가 된 팝스타들이 다 달라서 스타일도 매력도 완전 다른데 당연하게도 다 멋있다.
추천 대상: 짧고 굵게 브로드웨이를 맛보고 싶은 사람. 입문용으로도 추천! 어린이는 노노.
3. The Lion King
포스터가 점점 커지네. 브로드웨이의 터줏대감 정도로 여겨지는 라이온킹이다. 서울에서 친구가 놀러와서 거금을 주고 1층 오케스트라석에서 봤는데 그러길 너무 너무 잘한 작품이다. 라이온킹 등장인물을 생각해보면 죄다 동물 뿐이라 이걸 어떻게 구현하지? 싶었는데 다 한다. 진짜 천재들이 모여서 만든 것 같다. 솔직히 말하면 노래는 다른 뮤지컬에 비해 조금 아쉽긴 했으나 그걸 다 씹어먹을 만큼의 무대예술이라 괜찮다. 그리고 노래도 아는 노래라서 아주 친근하니 좋다.
추천 대상: 브로드웨이에서 제일 유명하고 어렵지 않은 작품을 보고싶은 사람. 영어 자신 없는 사람. 어린이 강추
4. Wicked
포스터에도 나와있듯이 오즈의마법사 속편이며, 뮤지컬을 자주 보지 않는 사람에게는 조금 생소할 수도 있지만 브로드웨이 흥행작 2위에 달하는 대작이다. 한국에서도 엄청 호화스러운 캐스팅으로 수년간 공연을 해오고 있으며 인기도 엄청 많다. 글린다와 엘파바가 주연인 여성 투톱 뮤지컬인데, 글린다와 엘파바는 뮤지컬 배우를 꿈꾸는 여성들의 꿈의 배역이라고 어디서 주워들었다. 그 이야기를 듣고 바로 '아~ 그럴 것 같네.' 싶을 정도로 두 배역이 극 전체를 이끌어나가는 힘이 대단하다. 노래도 스토리도 다 너무 감동적이다. 내 친구는 보고 눈물을 줄줄 흘렸다고 한다. 라이온킹을 본 직후에 봤는데도 절대 밀리지 않고 난 오히려 위키드가 여운이 많이 남았다.
추천 대상: 브로드웨이의 진수를 경험하고 싶은 사람. 어린이도 스토리 알면 괜찮을 듯.
5. Chicago
나왔다! 내 최애 뮤지컬. 나는 재즈를 사랑하는 사람이고 뉴욕과 재즈는 또 너무 잘 어울리고 뭐 이런 저런 핑계를 들어가며 오빠 졸라서 본 작품이다. 이 때 마침 브로드웨이위크로 티켓을 1+1 하고 있어서 한 명 가격으로 두 명이서 봤다. 덕분에 자리도 좋았는데 브로드웨이는 자리도 한 몫 하는 것 같음... 아무튼 올댓재즈 한 곡 듣고도 몸에 소름이 쫙 돋았다. 전체적으로 배우님들의 연령대가 높아서 (주연을 맡으신 분이 우리 엄마 나이였음) 약간 스토리랑 안 어울리지 않나 싶었는데, 시카고를 얼마나 오랫동안 하셨는지 머슬메모리로 몸이 노래와 춤을 다 기억하는 느낌으로 진짜 스무스하게 끌어가시는 것 보고 감탄에 감탄을 했다.
추천 대상: 재즈 러버. 여태 본 것들 중 남편 반응이 가장 컸던 작품. 어린이 노노.
6. Aladdin
최근에 나왔던 알라딘 영화를 보면서 윌스미스가 약간 병맛으로 재밌게 잘 살렸네, 라고 생각했는데, 저 지니 아저씨 보고 나면 윌스미스 명함도 못 내밀 것 같다. 진짜 지니 그 자체라 극 후반에선 사람으로 안 보이기 시작함. 알라딘이 뭐 설명이 필요한가? 난 너무 너무 재미있게 봤다. 라이온킹은 무대가 예술이지만 약간 극적인 노래가 없어서 아쉬웠다면, 알라딘은 무대도 예술인데 노래도 예술임... 아는 노래도 많고... 제일 무난하게 볼 수 있는 뮤지컬인 것 같다.
추천대상: 남녀노소 누구나 다같이 즐길 수 있는 작품. 가장 무난하고 실패 없을 듯.
7. Sleep no more
슬립노모어는 ㅋ ㅋ ㅋㅋ ㅋ ㅋㅋㅋ 진짜 너무 특이하고 특별한 무언극이라서... 뭐라 설명할 길이 없는데... 난 뉴욕에서 정말 특별한 공연을 보고싶어 하는 분은 꼭 보세요...^^... ㅎㅎㅎㅎㅎㅎㅎ 무슨 말을 해도 전달이 안 될 것 같고 무슨 말을 해도 스포가 될 것 같아서 말을 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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